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이클 잭슨/사생활 및 일화 (문단 편집) == 어린 시절 == [[파일:attachment/마이클 잭슨/jacksons_childhood.jpg]][* 왼쪽의 문장은 마이클 잭슨의 곡 "Childhood"의 가사 중 하나이다.][* 가사 해석은 '''나를 평가하기 전에 나를 최선을 다해 사랑해보세요. 당신의 심장을 바라보고 물어보세요, 내 어린시절이 어땠는지 아느냐고.'''] '''마이클 잭슨이 직접 그린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다.''' 이 그림을 봐도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슬픈 추억을 엿볼 수 있다. <[[HIStory]]> 앨범에 실렸다. "'''너무 일찍 데뷔해서 내 유년 시절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어린 나이에 데뷔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것을 보면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유년기를 보내야 했던 것이 상당한 [[트라우마]]'''가 된 것으로 보인다. 잭슨 가는 아홉 남매의 가난한 가정이었으므로 그의 아버지는 음악적 재능이 있었던 자식들을 밴드로 구성하여 공연을 다니게 했는데, 위에도 언급됐지만 잭슨 파이브 시절 확인된 공연만 500회이고 스트립 댄서들이 공연하는 성인 클럽에서 아이들을 노래하게 하는 등[* 유년 시절 이 성인클럽 공연에서 있었던 일은 잭슨의 자서전에도 충격적으로 묘사가 되어 있다.] 현재로서는 [[아동학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자식들을 가혹하게 굴렸다. 이러한 생활로 인해서 마이클 잭슨은 어린 시절에 공연을 다니면서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동경했다고 한다.[* 실제로 인터뷰에서는 유년 시절 레코드 사 건너편에 공원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서 곡 작업에 매진해야 했다고 한다.] 또 나머지 형제들이 아버지에게 맞는 것을 합친 것보다 마이클이 더 많이 맞았으며 따귀는 기본에 걸핏하면 폭언을 듣고 [[채찍]](!)에 맞기도 했다. 거꾸로 매달아놓고 채찍질을 당했을 정도... 또한 성숙되지 않은 초등학생 나이부터 여자들의 누드와 난잡한 성생활에 노출돼 어른의 문란한 생활 자체에 혐오감을 가지게 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조지프 잭슨은 본래 부인 캐서린을 내버려 두고 걸핏하면 다른 여자들과 외도를 해 [[사생아]]까지 낳았고 마이클은 이를 지켜보면서도 가족 관계를 위해 아무 일도 없었다고 엄마에게 말할 때 심한 고통을 입었다고 한다. 정규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초등학교]]는 몇 년 다녔으나 잦은 공연 활동과 팬들의 교실 난입 등으로 '''학교생활이 불가능'''했고 '''개인 교사에게 따로 지도를 받아서 정규 교육을 마쳤다.''' 대신 평생 독서를 즐긴 다독가였으며 도서관에 가까울 정도로 방대한 책을 소장했었다. 그가 [[마이클 잭슨/아동성추행 논란|아동 성범죄자로 의심받은]] 이유 중 하나는 이 유년시절을 상실한 트라우마로 인해 아이들을 자신의 집에 초청하여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고 아이들을 자신의 침실에서 재우는 것을 개의치 않아 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아이들이 마이클과 같이 있기를 원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자신의 침대를 양보하고 자신은 바닥이나 간이 베드에서 잠을 잤다고 하는데, 아파트 규모의 2층으로 된 거대한 침실이었고 항상 여럿이서 어울리는 공개적인 파티 같은 상황이었으며 거기에 그 어떤 성적인 의미나 행동은커녕 은밀함 자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면모가 2003년 방영된 《마이클 잭슨과의 삶(Living With Michael Jackson)》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악마의 편집|아동에 대한 이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처럼 묘사]]가 되어 곤혹을 치렀다.[* 다행히 잭슨 측에서 따로 영상을 촬영한 것이 남아있어서 대조한 결과 악질적인 편집임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이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 마이클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트라우마를 아동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승화했으며 유년기의 상처가 평생에 영향 끼친다는 것을 깨닫고 "Heal the world 재단"을 설립하여 아프고 굶주리거나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아동보호에 앞장섰다. "Childhood"와 "Heal the World" 등의 노래와 그가 그린 그림들에서도 그런 트라우마가 엿보이기도 한다. 마이클은 스스로 "'''제 인생은 내 안에서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라고 얘기했을 정도로 생전에 [[장난감]]을 사 모으거나 집을 [[테마파크|놀이동산]]처럼 꾸며놓는 등 [[키덜트]]적인 면모도 보였다. 마이클의 유명한 네버랜드는 마이클의 상실한 유년기에 대한 복원처이자 아이들을 위한 자선공간으로써, 놀이공원을 이용할 수 없는 아픈 아이들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도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특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40살 어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잭슨이 2005년에 아동 성추행 혐의로 소송을 벌이고 있을 때[* 소송 사건 당시 법원에서 병에 들어있는 사탕을 고르는 사진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평소에 사탕, 껌 등을 단 것을 굉장히 즐겨 먹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이클 잭슨은 사탕이나 과자를 무척 좋아했는데, 가수를 안 했으면 사탕가게 주인이 됐을 거라고 한다.] 절친인 [[코미디]] [[배우]] [[크리스 터커]]가 코미디 쇼에 나와 80% 이상을 잭슨 이야기만 한 적이 있었는데[* 영화 《[[러시 아워 2]]》에서 [[성룡]]과 더불어 [[홍콩]]으로 파견 근무를 갔을 때 성룡이 '홍콩에서는 내가 마이클 잭슨이고 넌 [[토토 잭슨]]이야' 라고 하자 터커가 '토토 잭슨이 아니라 [[티토 잭슨]](잭슨의 형제 이름)이야. 토토는 니들이 저녁에 잡아먹는 개 이름이구'라는 장면이 나온다.] 《[[러시 아워 2]]》에 나와서 잭슨 춤을 흉내 내고 잭슨 집에 불려가서 하루 종일 산더미 같이 쌓아둔 [[피터 팬]] 동화책만 읽었다고 하며 그런 마이클 잭슨이 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했을 리 없을 거라면서 그를 옹호했다. 실제로 잭슨 형제들이 음악 연습을 할 때 잭슨 형제들의 아버지 조 잭슨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는 이유로 [[벨트]]를 [[채찍]]처럼 휘두르고 [[구두]] 신은 발로 차는 등 '''온갖 학대를 하였다. 또한 아이들이 밤에 창문을 열고 나가지 못하게 밤중에 무서운 가면을 쓰고 어린 마이클 잭슨의 방에 들어왔는데 그 공포에 대한 기억이 큰 충격이 되어 10대 시절 마이클 잭슨이 악몽에 시달리는 원인이 되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조 잭슨은 자신의 [[기타]]를 건드렸다는 이유만으로도 자식들을 두들겨 패는 등 집안에서 공포의 대상이었고, 심지어 어린 시절 마이클 잭슨은 아버지의 얼굴만 봐도 부들부들 떨면서 기절하거나 구토 증세를 보이는 등 아버지를 심하게 무서워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생전 아버지와는 사이가 나빴으며 [[유언장]]에서도 아버지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고 [[유산]] 분배에서도 어머니 캐서린과 자신의 세 자녀들에게만 유산을 [[상속]], 아버지는 제외시켰고, 유산의 나머지는 기부했다. 자녀들의 양육권 문제에서도 어머니만 언급되었고 심지어 자신이 사망한 후 자신의 자녀들을 아버지가 자신처럼 스타로 만들려고 할지도 모른다며 싫어했다는 [[루머]]까지 있다. 마이클 잭슨 사후 그의 대변인은 마이클의 생전 악질 찌라시를 뿌리기로 유명했던 <더 선>에 조 잭슨이 25만 달러를 받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고 폭로했으며 자신으로부터 독립한 마이클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온갖 악질적인 수단을 쓰기도 했다고 밝혀 조 잭슨은 폭풍까임을 받았다. 마이클 잭슨 본인은 인터뷰에서 이야기하기 꺼렸지만, 그가 성인이 되어서 [[코]]를 성형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코가 못생겼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콤플렉스가 매우 심했기 때문이다. 많은 팬들이 그의 아버지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지만, 사실 잭슨 남매들의 가수로서의 트레이닝은 다 이 사람 손에서 이뤄진 것이기에 '''그 공헌도는 무시하지 못한다.''' 마이클 잭슨도 인정했듯이 아버지 조 잭슨은 그 자신에게 미스터리한 존재였을 뿐, 부동산 투자니 뭐니 어린이 스타들이 돈 때문에 겪는 일들을 하나도 겪지도 않고 음악만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버지 덕분이었다고 했다. 결정적으로 조 잭슨은 자식들이 번 돈을 착복하지도 않았고 그대로 자식들에게 투자했다.[* 막내 [[자넷 잭슨]] 역시 아버지가 [[프린스]]의 밴드 출신 프로듀서인 Jimmy Jam&Terry Lewis를 소개시켜주었기에 [[Control(음반)|3집]]의 대성공과 가수로서의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만 봐도 돈 관리 해주겠답시고 자기 자식이 연예인 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을 착복하고 뜯어먹는 부모라고 부르기 힘든 인간 말종들이 수두룩한 걸 생각하면, 방법이 잘못되었을지언정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랬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아버지로 인해 잭슨 남매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고, 마이클 잭슨은 성장하고 나서도 [[애정결핍]]에 자기애가 부족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9남매 전부 성인이 된 후 전부 폭력적이고 고압적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독립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조 잭슨 - 마이클 잭슨.jpg|width=100%]]}}} || || 법정을 나오고 있는 마이클 잭슨 - 조 잭슨 부자[* 2005년 6월 아동 성추행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찍힌 사진이다. 2차 성추행 재판 때는 아버지 조 잭슨을 포함한 잭슨가 가족들이 똘똘 뭉쳐 마이클의 재판 전 과정에 동행했었다.] || 마이클 잭슨은 후에 여러 인터뷰에서 아버지와의 관계는 다소 좋아졌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이야기했다. 심지어 옥스퍼드 대학 연설 때도 아버지에게 애정을 느꼈던 작은 일화를 언급하며 자신을 학대하고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긴 부친일지라도 자신의 일생을 부모에 대한 증오를 쏟는 데 낭비하지 말고 [[대인배|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것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잭슨 남매들이 마이클에게 툭하면 집에 찾아와 돈 내놓으라며 행패를 부릴 때마다 마이클이 조에게 전화를 걸어 쫓아버렸다는 일화를 보면 아버지를 적당히 이용도 하면서(...) 아예 외면하고 살지는 않았던 모양. 지금도 몇몇 극성 안티 [[찌질이]]들이 "마이클 잭슨은 어린 시절 이야기로 동정 마케팅이나 한다."며 비난을 하지만, 사실 잭슨 본인이 직접 나서서 어린 시절 얘기를 공식적으로 방송에서 한 것은 두 번밖에 없다. 나머지는 [[자서전]]에서 몇 번 언급한 것이나 "Childhood"를 비롯한 자신의 자전적인 곡에서 드러낸 것이다. 대부분 언론과 팬들이 그 부분에 과도한 관심을 표했던 것인데, 정작 본인은 남들이 어린 시절에 대한 어두운 얘기를 물어오면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그다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마이클 잭슨은 생전 수많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여담으로 2010년 조 잭슨은 마이클 잭슨 사망 관련 인터뷰에서 자신의 기업을 홍보했는데, 결국 아내인 캐서린은 아들의 죽음을 홍보로 이용하는 남편의 행동에 두 번이나 이혼을 요구하였으나 잭슨 가의 명예를 위하라는 자식들의 요구에 이혼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조 잭슨은 2018년 6월 27일, 아들의 기일 이틀 뒤 별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